:: 마을현황
가구수 : 45호(농가:40호, 비농가:5호)
인구수 : 106명(남:59명, 여:47명)
농지면적 : 71ha(논 : 26ha, 밭 : 31ha, 과수원 : 4 ha, 초지 : 10ha)
산림면적 : 325ha
 
:: 마을의 역사
 
수만리(水萬里)의 지명은 수촌(水村=물촌)마을의 수자와 만수마을의 만자를 각각 취하여 수만리라 하였다. 수만리는 물촌마을, 새터마을, 만수마을, 중지마을 등 4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수동 마을의 뜻은 마을에 마르지 않는 석간수가 있는데 이샘을 만수샘이라 하였으며 마을이름도 만수동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마을을 세분하면 만수동 강태 아금박굴로 구분된다.

강태마을의 뜻은 가운데의 준말로 표기된 것이다. 즉 가운데>간데>간테>강태로 변화 하였다. 아금박굴은 만수동 마을 뒤편의 한뜸으로 아금박굴에 있음으로 이렇게 부른다.

만수동은 1789년 호구총수에는 화순현 동면 만수동리, 1876년 대동지지에는 화순현 서면, 1895년에는 나주부 화순군 동면, 1896년에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1908년에는 능주군 원화순방 동면,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능주군 동면 만수동으로 기록 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화순군 동면 수만리로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변경에 의하여 동면에서 화순읍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화순읍 수만리가 되었다.

 
수만리는 대한민국의 알프스라 할 정도로 넓은 초지와 흑염소목장, 옛날 그대로의 오염되지 않는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동북방향으로 약 18㎞지점에 위치하고 승용차로 20여분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순읍에서는 10여분거리에 있다. 마을터는 무등산 중턱 해발 450여미터에 있고 전통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유하고 있는 산촌이다.
수만리 만수동 마을은 동쪽으로 대동산, 서쪽으로 만연산, 무지게재, 남쪽으로 연나리봉, 북쪽으로는 무등산, 중머리재, 안양산등 천혜의 관광자원이 있다.이지역은 개발제한 지역내 위치하고 있고 공장등 환경오염시설이 전혀 없으며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약초를 전답에 재배하거나 산에서 직접채취하여 판매하는 등 전통적인 민간농법을 시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다. 이지역은 마을 입구 인 만연산 주변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생태공원을 조성 중에 있으며 현대화된 식당이 3개소가 있어 약초를 이용한 흑염소 요리를 만들어 미식가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찾고있으며 사시사철 문전성시를 이룬다.
수만리는 화순군과 광주광역시와 경계인 무등산 장불재와 인접해 있으며 조선시대 이전부터 순천,여수등 남부지역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로 알려져 있다.
 
또한 휴양림에서 수만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둔병재(屯兵峙)는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주둔했던 곳으로 병기를 만들었던 쇠메기골이 있다. 지금도 쇠 찌꺼기가 나오고 있으며 물을 넘어오던 물목재, 장군대 등 옛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험한 산새로 인해 6.25때는 빨치산이 숨어지내 마을 사람들은 화순으로 피난을 가야했고 국군과의 접전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마을 자체가 높은산으로 둘러싸여 요새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특이한 산새를 자랑하고 최근들어 화순군에서 새로운 관광지로 단장하고 있다.
수만리마을에는 4개의 마을이 있어서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도시로 이주하여 각 마을에는 20여가구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최근에야 도로가 새로 포장되어 도시민이 선호는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광주산장과 화순온천, 이서면을 통해 오는길과 화순읍에서 큰재를 넘어 오는 도로는 보기드믄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있으며 사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예전부터 등산명소로 알려진 수만리는 광주에서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고 무등산 정상 등반시 가장 가까운 관광지가 될 것입니다.

 
:: 무형문화재
 
지정된 무형문화재는 없으나 다음과 같은 전통 놀이가 행해지고있는 곳이다.
+ 디딜방아 액막이
마을에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타지역에가서 디딜방아를 밤에 몰래 가져다가 마을 입구에 거꾸로 세워놓고 고쟁이를 씌워 액막이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한해동안 질병이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

+ 농악
시암굿. 마당볼비굿물 를 하였으며 전통적으로농악을 하여 왔다.

+ 당산점
다른마을에 있는 당산나무를 보고 당산나무잎이 한번에 피면 풍년이 들고 나누어 피면 가뭄이 든다고 하였다.

+ 줄다리기
정월 대보름이면 남녀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 기우제

재를 지내고 부녀자들이 키로 물을 까불곤 하였다.

+ 불 싸움

정월 대보름이면 만수마을과 새터마을 간 불싸움을 하였다.

+ 안양산 철쭉제

안양산 철쭉자생군락지가 10핵타 정도 있어 황홀하리 만큼 화려하게 꽃이 핀다. 매년 이곳철쭉을 보호하기 위하여 많은 사업비를 투입 애초작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봄철에 철쭉축제를 민간주도로 개최한다.